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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품연재/One Day(2016-2022) 2022. 10. 27. 11:04
비 오는 날에는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 좋아요. 신발이나 옷이 젖는 게 싫으니까요. 대신 클래식 음악과 함께 뒤섞인 빗소리를 들으면서 드라이브를 하거나 유리창 너머로 흘러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것은 낭만적입니다. 세상 편안한 옷을 입고 집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 내리거나 김치전을 만들어 먹는 것도 좋겠지요. 눈이 오는 날은 어떤가요? 독일인의 사랑을 쓴 막스 뮐러는 “남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는 때”부터 그녀/그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말을 했습니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 눈싸움하고 싶다는 생각을 더는 하지 않게 된다면요?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주는 고마운 눈이 시커멓게 길을 더럽힌다거나 출근길을 빙판으로 만들어 버릴까 봐 걱정부터 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미 어른인 겁니다.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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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의 색깔연재/One Day(2016-2022) 2022. 9. 22. 20:41
모두가 한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외쳤던 2002년, 그해 11월에 크레파스에서 색깔 하나가 사라졌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물론 우연이었을 뿐, 크레파스와 월드컵은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요. 사라진 크레파스 색의 이름을 알려드릴게요. 그 색깔의 이름은 살색, 피부의 색깔을 의미하는 ‘살색’이었습니다. 가나에서 온 커피딕슨(Coffiedickson) 씨를 비롯한 외국인들, 성남외국인노동자의 집 대표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면서 만들어진 변화였죠. 어린 시절, 살색 크레파스를 많이 사용했는데 그건 잘못된 거라고 알려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그 색은 절대로,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피부색이 한 가지여야만 한다는 건 정말 이상한 생각이 아닌가요? 상상력을 사용해서 세상을 멋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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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지혜연재/One Day(2016-2022) 2022. 9. 8. 10:34
매년 10월 3일 밤, 이탈리아 아시시에서는 성자 프란치스코를 기억하는 추모 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가 숨을 거둔 당시 기준으로는 일몰 뒤의 시간이 다음 날로 여겨졌기 때문에, 진짜 축일은 10월 4일이랍니다. 이틀에 걸쳐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성자를 기억하는 셈이네요.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는 “100년마다 한 번씩 성 프란치스코가 태어난다면 세상의 구원은 보장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프란치스코는 특히 동물과도 친근하게 대화했던 일화로 유명한데요. 자신을 평화의 도구로 사용해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던 프란치스코를 저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글을 통해 그의 맑은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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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얼굴들연재/One Day(2016-2022) 2022. 8. 2. 17:48
이번 가을 저는 아주 중요한 여행을 떠납니다. 지금껏 수많은 여행을 다녀보았지만, 이번 여행은 다릅니다. ENTJ인 저는 여행하는 시간뿐 아니라 여행을 준비하며 계획하는 시간을 즐거워하는데 이번 여행은 계획이 어렵습니다. 어디로 가게 될지,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알 수 없는 여행이라서, 조금 두렵고 떨리기도 하지만 그만큼 설렘과 기대도 큽니다. 그러니 ‘계획할 수 없음’을 즐겨보려고 합니다. 넓은 길에서 좁은 길로 들어서는 첫머리. ‘길목’이란 단어의 뜻이 어쩐지 마음에 듭니다. 이 여행의 길목에서 그리운 사람들이 여럿 떠오릅니다. 함민복 시인의 짧지만, 강렬한 시 한 소절을 읊어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다”는 시인의 말이 계획할 수 없는 여행의 길목 앞에 선 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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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의 기세연재/One Day(2016-2022) 2022. 6. 30. 00:40
비슈케크에서 우루무치로 날아가던 날이었어요. 왜 그랬었는지는 이미 기억이 나지 않아요. 직선이 아닌 한참 돌아가는 길을 택했거든요. 아마도 여비를 아끼려던 마음 때문이었겠죠. 모험을 즐기는 성격 때문이기도 했고요. 다시 지도를 펼쳐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될 만큼 이해하기 힘든 여정이었어요. 하지만 가끔은 그럴 때도 있잖아요. 느리게 돌아가고 싶은 그런 때.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서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 있는 우루무치로 가려면요. 그냥 동쪽으로 날아가면 돼요. 그런데 저는 동쪽이 아니라 북쪽으로 먼저 날아갔어요. 지금은 누르술탄으로 이름이 바뀐 도시, 아스타나를 경유해서 가는 일정을 선택했거든요.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런 모험은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북쪽으로 날아가던 비행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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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계절연재/One Day(2016-2022) 2022. 6. 30. 00:37
3년 전 라오스를 여행하며 사이좋게 삼삼오오 걸어가는 동자승들을 보았습니다. 주황색 승복과 색깔을 맞춘 가방, 그리고 우산이 인상적이었어요. 비가 오지 않는 9월이었는데도 뜨겁게 내리쬐는 볕이 얼굴을 태우기에 충분해 보였습니다. 우산이 있어서 다행이었죠. 앳된 얼굴들이었지만, 진지하고 결연한 표정을 가진 친구들이었습니다. 우산 너머로 보이는 얼굴들이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도란도란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자니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뜨거운 볕을 가려주는 우산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고마운 존재인 것처럼 보였거든요. 흔히들, 인생을 계절에 비유합니다. 어제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았어요.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생각하죠. 지금 나의 계절은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