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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rie Eleison세상속으로 2019. 4. 4. 21:07
처음에는 안개였던 것이 눈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눈 덮인 떼제는 상상해보지 못했는데! 떼제 공동체로 가는 길 내내 눈으로 하얗게 덮인 세상을 봤다. 하얀 눈처럼 우리의 마음도 깨끗하게 정화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제 교수님께서 내주셨던 숙제에 ‘인간의 욕망’이라고 바로 답을 적었지만 사실 가장 무서운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안의 욕망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싸’가 되고 싶은 욕망, 내가 주인이 되고 싶은 욕망, 힘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도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아싸’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어 왔다는 걸 역사가 증명해준다. 1%의 소금처럼 느껴졌던 발도파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랬다. 한국에 돌아가면 발도파에 대한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
루치아노 아저씨가 “따이제!”를 외쳤다. 아저씨만의 독특한 발음법인가 보다. 그렇게 와보고 싶었던 떼제다! 침신대 학생이라는 한국인 자원봉사자가 우리를 맞이하러 주차장까지 나와 주었다.
2019년 원장 수사님의 메시지가 담긴 소책자를 펼쳐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발도파 숙소에서 보았던 히브리서 13장 2절 말씀, 환대(Hospitality)의 정신을 여기에서도 보게 될 줄이야. 기분 탓인지 화장실에 적혀 있는 낙서마저 따뜻하게 느껴졌다. “Everybody is beautiful in their own way! 모두가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워요.”
짐을 풀기도 전에 점심 기도회 시간이 됐다. 떼제 기도회라니, 설렘에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화해의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서도 맨 처음 받은 느낌은 ‘따뜻한 환대’였다. 내 존재가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느낌, 마음의 무거운 짐을 스르르 내려놓게 되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성큼성큼 앞자리로 가서 무릎을 꿇고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떼제에서의 첫 번째 기도회를 마치고, 단기 방문자들이 사용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기도회와는 사뭇 다르게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흥미로웠다. 내 앞에 앉은 스페인 여자애는 “food to survive, not to enjoy 생존을 위한 음식이지 즐길 만큼 맛있진 않아”라며 혹평(?)을 했지만, 음식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우리는 예외적인 방문객이었기 때문에 기도회 외에는 떼제의 일과와 다르게 시간을 보냈고 점심 식사 후 리옹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고금자 선교사님, 떼제의 신한열 수사님과 귀한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고 선교사님은 “교역자는 가라고 하시면 가야지”하는 마음으로 처음 리옹에 오게 되었다고 하셨다. 유학생들끼리 기도 모임을 갖고 있는데 당장 주일 예배를 인도해줄 교역자가 필요하다는 얘기에 급하게 오셨다는 얘기였다. 나중에 보니 포장이사 업체에서 쓰레기로 가득 찬 쓰레기통까지 싸서 보냈더라는 얘기에 얼마나 분주한 상황이었을지 상상이 됐다. 그렇게 와서 어느덧 19년 차가 되셨다는 선교사님은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후배들을 향해 애정 어린 조언을 건네주셨다.
신한열 수사님은 떼제 곳곳을 돌아볼 시간과 함께 묵상할 제목들을 제시해 주셨다. 나는 그중에서 첫 번째 질문을 선택했다. “너희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요1:39)”
그러나 호기심 가득, 사진 찍기에 여전히 바쁜 나를 보면서 나 자신도 무엇을 찾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말씀하셨는데 나는 아직도 잘 들리질 않는다.
우리는 로제 수사님이 직접 사용했던 방으로 특별한 초대를 받았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람들을 언급하며 “형님”이라 부르시는 신한열 수사님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정말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그 호칭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떼제를 세운 로제 수사님은 기도 중에 정신 이상자의 칼에 찔려서 죽임을 당했다. 평생 평화를 위해 일하고, 폭력으로 생을 마감하다니. 신 수사님은 “평화는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선물”이라며 로제 수사님이 칼에 찔리셨던 밤의 기억을 생생하게 들려주셨다.
기도회 시간이 아님에도 종을 쳐서 사람들을 다 나오게 한 다음, 그날 떼제에 머무른 모든 신부와 목사가 사람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찬양과 기도가 그렇게 밤새 이어졌었다고 한다. 그렇게 밤을 새운 다음 날도 모든 일과가 멈춤 없이 진행되었었다고.
다시 저녁 기도회 시간이 되어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다른 기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키리에 엘레이손”만이 내 입에서 반복될 뿐이었다.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평화를 주소서.
유럽선교현장실습(2019.1)_Day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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