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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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세상속으로 2019. 4. 20. 01:01
우리나라의 옛날 여관 같은 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는데, 마치 돌아온 탕자라도 된 듯, 이제 진짜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지금껏 너무 많은 곳을 여행했기 때문일까. 그만큼 많은 세월을 방황한 까닭일까.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그렇게 감격스러운 일이다. 여관을 운영하는 할아버지는 마치 오래된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사람처럼 정겨웠고 무척 친절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때도 당황하지 않고 “손님, 죄송하지만 걸어서 올라가 주시겠습니까?”라고 정중하게 말씀하셔서 웃게 될 뿐이었다. 아침을 먹는데 많지도 않은 손님들 사이로 동양인 남자아이와 엄마가 눈에 띄었다. 그 아이도 같은 동양인인 내가 눈에 띄었나 보다. 장난기 가득한 눈빛이 우리 사이를 오고 갔다. 베를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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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며세상속으로 2019. 4. 19. 23:49
14시 51분. 프랑크푸르트행 기차 시간까지 베를린에서의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침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마음에 결정이 서질 않았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길을 나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관건은 본회퍼 하우스였다. 교수님은 베를린에서 본회퍼 하우스에 꼭 가봐야 한다고 신신당부 하셨지만, 어젯밤 홈페이지를 통해 토요일에만 문을 연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카톡방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남겼으나, 교수님은 “본회퍼에 마음이 가는대로”라는 답만 주셨을 뿐이다. 이대로 포기할지, 아니면 집 앞에라도 가볼지 결정이 쉽지 않았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서 본회퍼 하우스에 가려면 오늘 하루도 또다시 쫓기듯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본회퍼는 잊고 베를린 장벽 기념공원으로 가기로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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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하나로세상속으로 2019. 4. 19. 22:07
베를린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이 여행이 끝나간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서 아쉽다는 마음보다는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도 감사하고 큰 사건 사고 없이 마치고 있음에도 감사했다. 무엇보다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가장 큰 감사로 다가왔다. 버스 시간에 맞춰서 나온다고는 했는데 시간이 또 촉박했다. 어떻게 된 게 자꾸 시간에 쫓긴다. 여유롭게 여행을 누릴 수는 없는 걸까. 열심히 뛰어서 가까스로 도착했건만, 30분이 지나도록 버스가 오질 않았다. 덕분에 갑자기 내 발걸음에도 여유가 가득해졌다. 뛰어오던 와중에도 체코 돈을 다 소진한다고 급하게 간식거리를 조금 샀다. 옆에 서 있던 터키 친구에게 마카롱 하나를 나누어 주었더니 고맙다며 활짝 웃는다.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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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후스를 찾아서세상속으로 2019. 4. 7. 01:25
프라하는 1분 1초가 아까운 도시였다. 그래도 컨디션 회복을 위해 오늘은 충분히 늦잠을 잤다. 내 몸에게 미안하지만 사정을 했다. “조금만 더 버텨줘.” 밤 9시 반 공항 도착이라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은근 걱정을 했는데 이제 혼자서 길을 찾는 일에 완벽히 적응을 한 것 같다. 어젯밤 무사히 숙소에 도착해서, 한국말을 아주 잘하는 체코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는 집에 온 듯 긴장도 다 풀렸다. 나중에 체크아웃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인상 좋은 체코 사장님은 얼마 전에 한국 사람과 결혼해 알콩달콩 신혼 생활을 즐기는 중이라고 한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서 같은 방을 쓰는 프랑스인 여행자에게 영상 하나를 보여주며 말을 걸었다. 며칠 전 파리에서 루브르 박물관 로비 안까지 들어와 현수막을 들고 무언가를 외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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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Britain세상속으로 2019. 4. 7. 01:20
브뤼셀에서 런던행 기차를 타기 위해 입국 심사대를 지나면서, '브렉시트(Brexit)'를 떠올렸다. 분명 아직 브뤼셀이었지만 입국 심사대를 지나고 나니 분위기가 달랐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뭔가 다른 느낌이 있었다. 브뤼셀 기차역 안에 있던, 재활용품으로 영국 국기를 표현한 작품이 은근 마음에 들었다. “Welcome to green Britain!” 도버해협을 건너 도착한 영국의 첫인상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태리, 스위스, 프랑스, 벨기에를 거쳐 왔기 때문에 영어가 들리는 것이 반가웠다. 다른 나라들에서와 달리 처음으로 여기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너무 비싼 물가에 그 생각이 금방 사라졌다. 지하철 한 번 타는 데 7000원이 넘고 한국에서 3000원이면 살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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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매력세상속으로 2019. 4. 5. 22:30
브뤼셀에서는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오후 2시 런던행 기차를 타기 전에, 그저 발이 닿는 대로 시내를 걷기로 했다. 요즘 즐겨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 ‘드라마 바이블’로 사도행전 말씀을 들으면서 걷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못해, 프로테스탄트 교회 하나를 발견했다. 간판을 보고 교회 같다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택시에서 내려 교회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는 얼른 가서 말을 걸었다. 토요일 오전에 무슨 모임인가 싶어 물었더니 아뿔싸, 제칠일 안식교회란다. 임대료가 비싸기 때문에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아쉬움에 사진 한 장 함께 찍고 인사를 건넨 뒤, 계속 혼자 걸었다. 브뤼셀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꼽히는 오줌싸개 동상을 찾아서 가보았지만, 예상대로 특별할 건 없었다. 오줌싸개 동상 근처에는 와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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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alone세상속으로 2019. 4. 5. 22:18
11일간의 현장실습이 끝나고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다. 파리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맞이한 아침, 곧 혼자가 된다는 게 실감이 났다. 팀원들과 마지막 점심을 함께하고 헤어지려던 계획을 바꿔서 아침부터 혼자 다니기로 했다. 예정에 없던 루브르 박물관에 가기 위해서였다. 다른 건 몰라도 박물관은 욕심이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팀원들과 어젯밤 미리 인사를 나눴어야 했는데, 생각해보면 인생은 자주 이런 식이었다. ‘함께’이다가도 어느 순간 ‘혼자’가 되는 일이 그렇게 갑작스러울 것도 없다. 혼자 하는 여행이 처음도 아닌데 이미 일주일 이상을 많은 사람과 함께 다녔기 때문인지, 조금은 겁이 났다. 소매치기가 많기로 악명 높은 파리이기 때문일까. 이미 긴 여정에 지쳐 있는 탓에 일주일을 혼자 더 보내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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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란…세상속으로 2019. 4. 5. 22:03
새벽 6시 반, 잠에서 깨자마자 화해의 예배당으로 향했다. 고요한 새벽녘, 그곳에 머물러보고 싶었다. 헤른후트 기도서의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데 ‘하나님의 나의 아버지’라는 대목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슬픔도, 아픔도 이곳에 다 쏟아놓고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어제, 저녁 식사 시간에 대구에서 온 만 17세의 학생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자퇴 후 길을 찾는 여행 중이라는 이 친구에게서 큰 도전을 받았다. 떼제 기도회를 드려본 소감을 나누면서 비판할 부분은 없었냐는 그 친구의 질문이 떠올라 마지막으로 참여하는 아침 기도회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한 발 떨어져 앉아보기로 했다. 그 학생의 말대로 이렇게 좋은 떼제 기도회에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볼 지점이 분명 존재했다. 신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