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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에서는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오후 2시 런던행 기차를 타기 전에, 그저 발이 닿는 대로 시내를 걷기로 했다. 요즘 즐겨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 ‘드라마 바이블’로 사도행전 말씀을 들으면서 걷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못해, 프로테스탄트 교회 하나를 발견했다. 간판을 보고 교회 같다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택시에서 내려 교회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는 얼른 가서 말을 걸었다. 토요일 오전에 무슨 모임인가 싶어 물었더니 아뿔싸, 제칠일 안식교회란다. 임대료가 비싸기 때문에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아쉬움에 사진 한 장 함께 찍고 인사를 건넨 뒤, 계속 혼자 걸었다.
브뤼셀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꼽히는 오줌싸개 동상을 찾아서 가보았지만, 예상대로 특별할 건 없었다. 오줌싸개 동상 근처에는 와플 집들이 많았다. 말로만 듣던 진짜 ‘벨기에 와플’ 하나를 사서 먹는데 한국에서 먹는 것이랑 맛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법 추운 날씨 탓에 10유로를 주고 머플러도 샀다.
하루 만에 복잡한 지하철 구조도 적응을 마쳤고, 구글 오프라인 지도 이용법도 익혀서 이제 길 찾기엔 문제가 없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그렇게 계속 걷다가 잠시 몸을 녹이려 성당에 들어갔다. ‘성 미카엘과 성녀 구둘라 대성당’이라는 이름의 성당이었다.
그렇게 들어간 성당 안에서는 아시아계 리틀 오케스트라의 멋진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도 귀에 너무나 익숙한 캐논 변주곡이 연주되고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다가 가만히 앉아 음악을 감상했다. 열심히 사진을 찍는 학부모들의 모습을 보면 한국, 중국, 일본 어느 나라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한국 아이들 같지는 않았다.
유럽의 한복판에서, 그것도 가톨릭 성당을 통째로 빌려서 연주회를 하다니! 추측이 맞았다. 역시 중국이었다. 이 먼 나라까지 와서 중국의 힘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더구나 아이들의 연주 솜씨는 놀랍도록 훌륭했다. 박수를 아낄 이유가 없었다. 이런 게 발이 닿는 대로 떠나는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몸을 충분히 녹였음에도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질 않았다.
끝까지 그 음악회를 감상하느라 결국 런던행 기차를 놓치고야 말았지만, 그 또한 여행의 묘미일 터. 한 시간 반만 기다리면 다음 기차를 탈 수 있는 건데, 시간에 쫓긴 채로 땀을 흘리며 뛰어왔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왜 그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아왔나 싶다. 삶은 어떻게든 흘러갈 것인데 왜 그렇게 조바심을 냈을까.
유럽에서 13일째,
혼자서 2일째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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